1. 세스크 파브레가스의 성장과정
세스크의 부친인 세스크 파브레가스 시니어는 원래 직원 10명 안쪽의 조그만 공사용역 업체를 운영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억세스할 수 있는 세스크의 biograhy들은 하나 같이 세스크가 중산층 출신이라 언급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선 중산층을 구분짓는 경계 자체가 위정자의 입맛에 따라 오락가락하면서 확실한 정의가 정착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세스크를 중산층 출신이라고 명시할 경우 달리 해석될 소지가 있는 바, 이 포스팅에선 세스크의 유소년 시절
가정형편은 극빈층은 아닌 '그냥 밥은 먹고 사는 수준' 정도로 정의하겠습니다.
이는 '아스날에 입단하기 바로 전 해에 아버지 일(공사 막노동)을 돕고 싶었고, 만약 축구 선수가 되지 않았더라면
다른 친구들이 그랬던 것 처럼 부모를 따라 돈을 벌기 위해 직업전선에 뛰어들었을 것이다.'라고 말한 세스크를 통해
확인될 수 있습니다. (http://cescfabregasfans.com/biography/)
파브레가스 시니어는 비록 육체적으로 고달픈 블루컬러 노동자였으나 축구에 대한 열정 하나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사람이었고, 이는 아들 세스크가 태어난 이후에도 변함없이 계속되었습니다. 파브레가스 시니어는 세스크의
첫번째 축구 지도자였고, 틈만 날 때면 아들과 축구시합을 보러가거나 자신의 아마추어 축구시합에 세스크를 데리고
감으로써 세스크에게 축구에 대한 눈을 뜰 수 있게끔 해줬다고 합니다. 하지만 파브레가스 시니어는 여느 아버지와는
달리 자신의 아들에게 축구 선수가 되길 강요하진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세스크가 열살이 되던 해에 Mataró의
지역 유스팀에서 뛰던 세스크는 같은 유스리그에 속해있던 바르까 유스팀과 조우하게 되었고, 거기서 세스크의 범상치
않은 재능을 발견한 바르셀로나 관계자는 세스크에게 트라이얼을 제의해왔고, 여기서 합격점을 얻은 세스크는 일주일에
한 번 자신을 데리러 오는 콜택시를 타고 바르셀로나로 건너가 훈련을 받았었다고 합니다.(약 34km거리)
세스크는 이 짓을 무려 5년 동안 했었고, 바르셀로나를 떠나 아스날에 입단하기기 직전에 단 1년 동안만 라 마시아에서
기숙사 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아스날 입단 비화를 얘기하는데, 성장과정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구요? 다 연관이 있습니다.
2.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바르셀로나 그리고 아스날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세스크가 아스날에 입단하게된 과정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세스크 영입 당시에는 지금과는 달리 세스크 영입과정에서의 문제점이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고작해봐야 바르셀로나에서 피파에 어필을 했던 것과, 스페인어 혹은 영문의 FC바르셀로나 포럼에서도 그냥 될성 부른
라 마시아 소속의 어린 친구 하나를 아스날에서 꾀어내어 채어갔다는 식의 우는 소리 정도가 대다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마저도 피파의 조정(권고)가 있은 다음, 산드로 로셀과 데이비드 데인이 콜니에서 만나 세스크 보상에 대한 합의점을
찾은 이후부터는 아스날에 대한 불만 섞인 소리는 완전히 사라지다시피 했었습니다.
아마도 보상에 대해 적절한 조취가 취해진 이상 16살짜리 유망주의 성공가능성을 담보로 더 이상 가타부타할 꺼리가
없어졌었기 때문이었을테지요. 따라서 세스크 영입의 부적절성은 금새 수면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하지만 04년 여름에 헤라흐드 피케가 세스크와 마찬가지로 바르셀로나에서 성인프로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만체스터
유나이티드에 합류했고, 04-05시즌에 비에이라와 질베르투 실바 둘 다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많은 출전기회를 잡게 된
세스크가 간간히 번뜩이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국내외를 막론하고 바르셀로나 팬들로부터 시기어린 시선을 받게 되었고,
그러한 분위기가 세스크 영입과정의 부적절성을 질타하는 분위기로 까지 이어지게 된 것으로 전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2006년 아스날이 라 마시아 출신의 프란 메리다를 영입하게 되면서 정점으로 치닫게 되었고, 그보다 더
후에 세스크가 아스날TV를 통해 '아스날 스카우터가 자신을 44번씩이나 보러 왔었다고 했고, 자신이 아스날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벵거가 휴일을 반납하면서까지 자신을 보러 바르셀로나로 건너왔었기 때문'이라고 밝히게 되면서
아스날이 세스크에게 사전 불법접촉을 하여 바르셀로나로부터 세스크를 빼왔다는 믿음이 일련의 웹사이트 등지에서
확산/강화되기 시작했습니다. (http://cescfabregasfans.com/2009/08/13/cesc-i-thought-arsenal-had-doubts-over-me/)
이에 대하여 저는 '아스날이 결국 법의 맹점을 이용하여 세스크 영입에 성공한 것은 맞지만, 아스날이 불법접촉을 통하여
세스크를 꾀어내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세스크가 바르셀로나를 떠나 아스날에 입단한 시기는 정확히 2003년 9월 11일입니다만 (닷컴 참조) 이미 8월부터
아스날에 합류했다는 소문이 파다했었고, 이는 당시 여러 매체를 통해 사실임이 확인되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직전인 2003년 6월 15일에 바르셀로나의 회장 선거가 있었고, 라포르타는 바로 이때 당선되었더랬죠.
여기서 우선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유소년 선수에 대해서 프로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시기의 국가별 차이입니다.
잉글랜드는 선수가 만 16세가 되면 프로계약을 체결할 수가 있는 반면에, 스페인에서는 자국의 노동법 규정에 의거
만 18세가 되어야만 프로계약을 체결할 수가 있습니다. 세스크의 생년월일은 1987년 5월 4일인데 세스크가 16세의 생일을
맞이할 그때는 바르셀로나의 회장선거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였습니다. 라리가의 종반전이 한창 진행되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당시 바르셀로나는 시즌을 6위로 마감하는 부진한 성적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외려 바르셀로나 소시오들의 관심사는
자신들의 클럽을 새로운 길로 인도해줄 새로운 회장선출건으로 집중되기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이미 바르셀로나와 아스날은 99년에 통칭 '나노(Nano)'로 불리웠던 당시 나이 16살이었던 유망주의 영입문제로
미묘한 알력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바르셀로나는 나노의 이적을 저지하는데 성공했던
전력이 있었습니다. (http://www.arseweb.org/www/newsreel/t11i50.html)
이 사태로부터 교훈을 얻은 바르셀로나는 자신들의 유소년 훈련생들과 18세에 프로계약을 체결하기 이전에 사전 가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자신들의 선수들을 지키려는 시도를 했었습니다. 훗날 얘기지만 세스크 파동이 있은 다음엔 아주 재능이
뛰어난 선수의 경우엔 15세... 심지어 14세일 때 사전 가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도 생기게 되었는데 바로 프란 메리다가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세스크도 당시 라 마시아에서 리오넬 메시, 헤라흐드 피케와 함께 손꼽히는 재능으로 분류되었던 바, 16세의 생일을 맞이하던
무렵의 세스크는 응당 바르셀로나로부터 자신의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 사전 가계약을 제시받아야 했었지만, 클럽의 부진한
성적과 회장선거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던 바르셀로나의 수뇌부들은 세스크와의 계약 체결에 소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훗날 세스크는 바르셀로나를 떠나기 전에 클럽으로부터 일단은 (거취문제에 대해) 기다리라는 연락을 받았고 그 상황에서
아스날이 접촉해와서 아스날로의 이적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술회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세스크가 당시 상황을 약간 우회적인
방법으로 표현한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사실과는 다소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스페인어로 된 위키피디아의 개그버전격인 'LA FRIKIPEDIA'에 따르면 2003년 중반에 라포르타로부터 계약을 제시받았으나
출전기회 보장 부분에서 원하는 바를 획득하지 못한 세스크는 결국 계약을 거절하고 아스날과 사인하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http://www.frikipedia.es/friki/Cesc_F%C3%A0bregas) 또한 근년의 라포르타 역시 그 당시 선거에 집중하느라
세스크 계약 문제에 대해 세세한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도 발언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종합해보면 아스날과의 사인 이전에 바르셀로나 측의 오퍼가 선행했다는 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일단 여기까지만 볼 땐 적어도 '바르셀로나가 자신들의 유소년 선수에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동안, 그 틈을 타
아스날이 낚아채어갔다'는, 현재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 같습니다.
3. 아스날의 스페냐드들
당장 여러분들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스날의 스페인 출신 선수들은 누가 있나요? 현역, OB를 막론하고 말입니다.
아마도 세스크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고, 넘버원 알무니아나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가 그 뒤를 따르지 않을까요?
얼마전에 AT 마드리드로 떠나간 프란 메리다도 있고, 유스팀 소속인 이그나시 미켈도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이 무언지 아십니까? 전부 스페인 출신이란건 너무나도 당연한거고, 한 가지 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에이전트가 같다는 점이지요. 스카우터가 같았다는 공통점도 있었군요.
이들의 에이전트는 라 리가에서 수많은 선수들을 거느리고 있는 호세바 디아스(Joseba Díaz)입니다.
이들을 스카우트했던 인물은 아스날의 스페인, 포르투갈 지역 스카우터로 활약하고 있는, 과거 아스날의 훈련생이었으며,
바르셀로나 B팀(칸텔라)의 선수이기도 했던 프란시스 카기가오(Francis Cagigao 스페인 혈통의 영국인)입니다.
(http://historiasracinguistas.blogspot.com/2008/10/francis.html)
위에서 언급한 바 있는 나노라는 선수 역시 카히가오가 벵거에게 추천을 했으며, 당시 그의 에이전트는 호세바 디아스였습니다.
뭔가 느껴지는 바가 있으신지요? 아스날의 모든 스페인 출신의 선수들은 어찌되었거나 이 둘을 거쳐서 영입되었었다는 것입니다.
Nano건은 결국 바르셀로나가 더 나은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에 이적이 불발된 케이스이지만, 그 건을 제외하고는 이 둘이
컴비네이션을 이룬 경우엔 거의 다가 영입에 성공을 한거죠.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유일한 실패사례가 리오넬 메시인데,
당시 에이전트 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있던 리오넬 메시에게 디아스가 접근하였으나 아스날로의 이적문제는 워크퍼밋 문제
때문에 불발되어버리고, 이 후 세스크를 빼돌리다시피 한 디아스를 경계하던 바르셀로나 때문에 메시는 디아스와 에이전트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레예스와 알무니아는 이미 프로상태였던 선수를 영입한 것이지만, 세스크, 메리다, 미켈, 그리고 불발에 그쳤던
나노나 메시는 모두 성인 프로계약을 체결하기 이전의 유소년 훈련생들이었다는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세스크의 케이스는 그 영입 시기가 오래되어 현시점에서 당시 자료를 입수하기에 어려움이 따르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메리다나 이그나시 미켈의 이적 사례를 통해 세스크 이적건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어느정도 유추해볼 수는 있지요.
4. 프란 메리다와 이그나시 미켈
프란 메리다는 라 마시아에 몸담고 있던 당시 '왼발의 과르디올라'로 불리울 정도로 뛰어난 재능으로 평가받던 선수였습니다.
바르셀로나는 프란 메리다의 재능을 높이 사서 이미 그의 나이 15살 때 사전 계약을 체결했을 정도로 그를 아꼈으며,
다시는 세스크, 피케 그리고 파체코 같은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소년 선수 보호에 만전을 기했고, 자신들의 선수에 대한
잉글랜드 클럽들의 스카우팅에 대해선 극도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곤 했었습니다.
그런 민감한 분위기 속에서 바르셀로나가 많이 아꼈던 프란 메리다인데, 그런 그가 15살이던 2005년에 돌연 잠적을 해버립니다.
이유인 즉, 바르셀로나 측의 사전 계약에 따른 자신의 미래가 불투명해보였기 때문이라는데, 이를 옆에서 부채질한 호세바 디아스의
역할도 한몫을 했을테지요. 메리다는 잠적 끝에 돌연 에이전트와 함께 잉글랜드에 나타나서 아스날과 리버풀, 만유랑 접촉을
했고, 레알과 밀란과도 컨택을 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제 생각으론 처음부터 잠정적인 행선지가 정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스날이 놀아난 것으로 보이는데 어찌되었거나
프란 메리다는 결국 아스날에 정착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와의 사전 가계약으로 인하여, 스페인 법원으로부터
바르셀로나에게 보상금 명목으로 €3.2m를 지불해라는 판결을 받아 아스날은 그에 따라야만 했고, 결국 메리다와의 정식 프로계약
체결은 2007년 중반이 되어서야 이루어졌었습니다.
(http://www.mirrorfootball.co.uk/opinion/blogs/mirror-football-blog/Fran-the-Man-actually-he-s-still-a-Boy-10-things-you-need-to-know-about-Arsenal-starlet-Fran-Merida-article204811.html)
(http://en.wikipedia.org/wiki/Fran_M%C3%A9rida)
이그나시 미켈은 현재로썬 알려진 정보가 많지 않습니다. 92년생이고 키가 193cm인 장신의 센터백에, 원래 라 마시아 출신이었지만,
거기서 방출되어 코르넬랴에서 훈련받던 것을 프란시스 카기가오가 벵거에게 연락해서 사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냥 단순한 루머인진 모르겠지만 바르셀로나 팬사이트에선 호세바 디아스가 미켈의 이적문제로 인하여 또다시 문제를 야기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러 먼저 라 마시아로부터 이 친구를 빼내어서 UD 코르넬랴에 안착하게끔 한 다음 아스날과 프로계약을
체결하게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었습니다.
이미 15세의 어린 나이에 193cm에 육박하던 장신이었고, 스페인 U-16의 멤버이기도 했던 그를 구태여 라 마시아에서 방출할 이유는
전혀 없기 때문에 저러한 주장은 큰 설득력이 있다 할 수 있겠습니다.
5. 결론
현재로썬 세스크가 아스날에 착륙했던 2003년 당시의 자료들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시 제가 실시간으로 스페인쪽 혹은 아스날쪽 팬포럼을 통해 접했었던 세스크 이적 비화에 대한 정보 역시
이 포스팅에서 제가 사용한 추정 방법을 그대로 답습했던 것에 불과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당시엔 호세바 디아스가
아스날과 일정한 커넥션을 맺고 있다는 사실 외엔 달리 누적된 사례들이 없었기 때문에, 세스크의 이적이 디아스의
주도 하에 이뤄졌었다는 주장은 그 근거가 빈약했었습니다. 하지만 메리다 이적 사건을 계기로 디아스의 실체가 뚜렷하게
드러나게 되는 바람에 2006년 즈음에 이르러선 저 역시 디아스의 개입을 거의 정설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겁니다.
간단히 정리해보자면, 2002년 무렵부터 세스크를 지켜보며 벵거에게 추천했었다는 카기가오는 사실, 세스크의 에이전트로부터
추천을 받아서 지켜봤던 것이고, 2003년 바르셀로나의 제의가 못마땅했던 세스크를 에이전트인 디아스가 회유한 끝에
세스크는 벵거와 조우를 하게 되었던거고, 여기서 자신의 미래에 대한 확신을 받은 세스크는 결국 아스날 입단을 결정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확적 근거에 의거, 아스날 측에서 먼저 사전 불법접촉을 하여 세스크를 꾀어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겁니다.
정황에 의존해서 근거가 약하다 꼬집으실 분도 계실진 모르겠지만, 원래부터 비하인드 스토리란 것의 성질이 대게 이러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믿지 못하시는 분들께선 웃어 넘기셔도 좋습니다.
6. 몇가지 추가 사항
스페인에서는 18세가 되어야만 성인 프로계약을 체결할 수 있고, 프로계약 체결 이전의 훈련생이라 하더라도 FIFA의 유소년 보호
정책에 의거하여 양 부모가 거주지를 이전하지 않는 다음에야 훈련생 신분으로서는 클럽을 옮길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세스크 역시 부모의 거주지 이전이란 편법을 통하여 아스날로 이적을 해올 수가 있었는데, 세스크의 부모님은 세스크가
어릴 적에 이미 이혼을 했던 상황이었으므로 세스크의 부친인 프란세스크 시니어만 런던으로 이주해오는 방법으로, 세스크를
바르셀로나로부터 데리고 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프란세스크 시니어는 바르셀로나에서 공사용역 사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런던에 집만 구매한 다음 거주지 주소만 이전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던 것으로 압니다.
따라서 세스크가 2003년 FC 바르셀로나를 떠난 직후에 제기된 FIFA 소송에서의 주안점은 과연 프란세스크 시니어가
런던에 실제로 거주하는지에 대한 여부였습니다. FIFA의 조사가 어떤 식으로 귀결되었는지는 알 바 없으나, 종국에 FIFA가
아스날로 하여금 바르셀로나에게 보상금 €1m을 지불하라는 권고명령을 내린 사실로 미루어 보아, 프란세스크 시니어의
실제 거주지 문제에 있어 문제가 발생하였던게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일부 스페인 언론에선 보상금을 €0.5m이라고 보도함)
사실, 말이 공사용역 업체 오너였지, 자신 스스로도 노동자에 불과했던 프란세스크 시니어에게 런던에 집을 사거나 하다못해
렌트비를 지급할 만한 경제력도 없었을 것은 자명합니다.
이에 보상금 문제를 놓고 아스날과 협상하고저 런던으로 날라온 당시 바르셀로나의 부회장이었던 산드로 로셀은 데이비드 데인과의
협상 끝에 오베르마스 이적료 미지급분과 시행되지 않고 있었던 양팀간의 친선경기 한 시합의 입장수익료를 세스크의 보상금과
갈음하고자 했고, 실제로 현금을 챙기진 못했짐나 장부상으론 당연히 더 많은 돈을 챙기는 격인 데인의 제의를 수락하고 콜니를
떠났습니다. 또한 아스날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03-04시즌 직전에 바르셀로나로 임대보내었던 지오반니 반 브롱크호스트의
임대료 미지급분에 대해서 받지 않기로 결정했으며, 시즌 종료후 바르셀로나에 남고 싶겠다는 의사를 밝힌 지오와 그를 정식으로
영입하고 싶어하던 바르셀로나에 €2m이란 매우 저렴한 이적료로 지오를 놓아주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세스크 영입엔 어림잡아 €7m 이상의 돈이 투입된거나 마찬가지인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거기에 이 당시 데이빗 데인과 산드로 로셀이 회동했을 때 세스크가 라 리가로 이적할 시 바르셀로나로의 이적을 첫번째 옵션으로
고려한다는 약정을 맺기까지 했었답니다.
당시 아스날로선 FIFA에서 권고한 €1m이란 보상금을 지불하는 것을 표면적으로 거부한 대신 다른 창구를 통해 바르셀로나와
일종의 합의를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 보상금을 지불함으로써 필연적으로 생길 수 밖에 없는 전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전례를 남기지 않으려했던 아스날의 이러한 노력은 메리다 사건으로 인해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이죠.
어쨌거나 아스날은 세스크의 영입과정에서 선수 부모님의 거주지를 이전시키는 편법을 동원했었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선 비판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바르셀로나에서 계약을 제시하기 전에 아스날이 선수를 쳐서 선수를 빼왔다는 부분은 결코 사실이
아니며, 정황적 근거에 의거 세스크의 에이전트 측에서 선수의 미래에 대해 여러 가능성을 상정해두는 과정에서 아스날 쪽에
먼저 접촉한 것이란 점.. |